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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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한티재 하늘

슬픔에 관한 것 2017. 10. 7. 05:27

권정생 선생의 ‘한티재 하늘’

긴 추석 연휴에 한티재 하늘을 읽었다. 원래 계획은 총10권이나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1, 2권이 다다.​​ 만약은 없지만 10권이 다 마무리되었다면? 토지나, 아리랑, 한강처럼 좋은 소설로 길이길이 남았을 것이다.

한티재 하늘은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니껴” “니더”로 대표되는 말들이 나온다. 정겹다.

한티재 하늘은 조선민중의 수난사라 할 수 있다. 쫒기고 빼앗기고 죽고, 삶 자체가 눈물이고 한이다. 잘나고 배운 사람은 없다. 민초들은 들풀처럼 끈끈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대물림한다. 스스로 또는 타인에 의해 이곳 저곳을 옮겨다닌다. 생존을 위해.

조직적으로 집단적으로 세상에 맞서는 그런 부류의 이야기는 아니다. 억압,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안고 산다. 순응이 아니라 긴 세월을 눈물과 억센 노동으로 이겨낸다.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속박된 노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옥 애미는 언 강물에 몸을 던진다. 딸의 도망을 돕기 위해 같이 자살한 것처럼 꾸며, 노비가 아닌 새 삶을 살도록 한다. 거지(걸뱅이) 동준과 문둥병에 걸린 분옥이의 깊은 정과 애끊은 삶, 요즘 세상과는 다르다. 어쩌면 같은 듯 다르고 다르면서 닮은 꼴이다.

언뜻 보면 죽지 못해 사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팔자로 운명같이 받아들이면서 이겨내고 삶의 끈을 놓치 않는다. 원망하기도 하고 숙명으로 알고 산다. 시대와 조건, 환경이 다를 뿐 우리네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척박한 가난을 평생 업으로 삼는 거, 한티재 하늘 역시 한과 업의 이야기다. 벌거숭이 백성들 이야기, 가난하고 애달픈 고난사를 고스란히 다 드러낸 준다. 그런 점에서 박경리의 토지와 다르다.

1,2권 뿐이니 아쉬울 따름이다. 마저 완결되었다면 새로운 이정표가 되지 않았을까! 비록 시작에서 끝나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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