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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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세계

도로공사 김천 본사를 다녀오다

슬픔에 관한 것 2019. 9. 28. 08:50

지난 주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를 다녀왔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열리는 날이라, 조합원 및 대의원들이 타고 온 많은 버스와 승용차로 앞 도로부터 붐볐다. 톨게이트에서 저 멀리 우뚝선 건물, 외벽에 우리는 동료다라고 휘갈겨 놓은 도로공사 정규직의 헛소리 현수막. 우스꽝스러운 정규직 노조의 쇼?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와 달리 본사안에 온갖 현수막과 구호, 곳곳에 숙식을 위한 천막과 텐트들로 가득차 모습. 진풍경이라 해야 하는데 근데 좀 비참하기도. 비닐로 가리고 어떤 곳은 종이박스를 깔고 가림막으로 사용하고 그 가운데 차량진입은 통제하는데 사람은 막지 않은.
본사 밖의 모습이 이러니 농성장 안은 볼 수 없으니 뭐라 표현할 게 없다. 반은 민주노총 조합원과 농성자들이고 반은 경찰이니 흡사 경찰청 안 같다.
맞이하는 이들의 표정은 무뚝뚝하기도 하고 농성의 일상화 탓인지 그 나름의 방식대로 편히 누운 사람, 천막안에서 쉬는 사람,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들. 본사 안을 한번 들어다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 바깥의 농성자들을 보니 아! 이 절박함을 누가 알리요,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빨래대에 걸린 투쟁조끼와 옷들, 설겆이 하는 이, 그냥 쉬는 이들, 반갑게 맞이하는 이, 널부러진 이들을 보니 꼭 어디 수용소 같은, 대피소 같은 느낌이 확 몰려온다.
화장실 앞이나 계단 밑, 비나 바람을 피할 수 있거나 어디에 묶을 곳이라도 있으면 일단 자리를 펴 놓았다.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도 되는 듯 곳곳에 농성자들이 옹기종기 삼삼오오 노숙농성 중이다.
누울 자리만 보이면, 아주 작은 곳 공간만 있으면 농성장을 꾸린 듯 하다.

그날이 15일째란다. 본사안에 200명 바깥에 300명 정도가 있다고 했다. 곳곳에 경찰이 빙 둘러싸고 있는 듯 한 모습이나 약간의 긴장감이. 안에서 한번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으니 잦은 병치레나 약을 달고 다니는 이들이나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야 하는 이들은 아주 불편하고 곤혹스러울 것이다. 직접고용을 원하는데 자회사로 가라는게 원인이다. 그날 도로공사는 직접고용 판결을 받은 노동자 개인에 직무교육을 받아라 하는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안에서 나올 수도 없고 직무교육을 통해 다시 한번 분열을 조장하고 도로공사는 할 일을 다 했다는 생색내기용이라, 전원 불참했다는. 야비함을 넘어 반노동자적이기까지. 같은 노동자가 저 모양이니 이 사회의 차별이 없어지기는 할까. 노동조합과 노동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같은 하늘아래, 같은 이 땅에 살면서, 우린 너희와 다르다. 우리가 주인이고 너희는 우리의 노예다? 이런 거랑 뭐가 다른지. 불둑 성질이 난다. 귀족노조, 귀족노동자란 말도 아깝다. 생양아치고 어용일 뿐이다. 저들은 노동자가 아니다. 구사대고 회사의 앞잡이다.

한국도로공사!
왜 앞에 한국이나 대한, 이런 명사가 붙으면 이런 양아치 짓을 하는지. 부끄러움을 모르나보다. 하여간 직접고용은 이루져야 한다. 도로공사는 교섭에 나와서 직접고용을 수용, 이행해야 한다. 농성이 길어질수록 도로공사만 손해다. 비록 약하고 힘이 없을 뿐이지 이들의 실천행동은 이천만 노동자의 모범이다. 톨게이트 직접고용 투쟁은 비정규 투쟁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투쟁이다. 자회사 아닌 직접고용을, 한국도로공사 양아치 집단과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한편으로 어용과 귀족임을 자처하고 기득권인 양 설레발이 치는 일부 집단과 투쟁이다. 이쩌면 촛불 이후 우리 사회는 보다 디테일한데서 마주치고 싸우는 중이다.거악에 기댄 채 거악을 닮아가는 괴물들과 함께 할 수 없음을 각인하는 시간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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