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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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권여선 <카메라>

슬픔에 관한 것 2018. 3. 13. 18:07

​​카메라의 존재? 과거와 현재에 얽힌 애증

라디오 프로그램의 팀원으로 일한 <문정>과 <관희>는 구성작가와 허드렛일을 하는 관계. 그러나 <문정>은 헤어진 애인 <관주>의 누나임을 알지만 <관희>는 <문정>과 <관주>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다.

둘은 모임이 끝난 후 문정이 내린 역과 가까운 맥주집에서 술을 마신다. 관희는 문정이 관주의 애인임을 모른채, 문정은 관주의 죽음을 모른채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에서 그들은 사실을 알아버렸다.

카메라. 문정과 관주는 헤어지기 전 사진찍기를 배울 요량이였고, 그렇게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찍기에 하던 관주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문정.

동생 관주가 죽은 동네에서 문정이 산다는 사실을 알고 마침내 그 카메라을 매개로 한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했으나, 문정과 관주가 애인이였음을 알아챈 관희는 동생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카메라를 택배로 문정에게 보낸다.

카메라. 연결과 매개체인가? 문정이 받은 카메라 메모리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과거가 없는 카메라,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사진기 속의 텅 빈 메모리처럼 흘러간 과거는 기억조차 없다는.

문정의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는 아무런 흔적조차 간직하지 않은 채 문정에게 맡겨졌다. 헤어짐의 이유는 없지만 카메라를 통해 문정을 잊지 못한 관주는 뜻하지 않게 사진을 찍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카메라는 관주와 문정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처럼, 그들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그렇게 다시 카메라를 통해 재구성되지만 아무것도 남아있지는 않다.

지금은 카메라가 귀한 시절도 아니다. 휴대폰마다 카메라가 있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읽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아직 존재한다. 카메라는 결국 주인을
찾았고 문정 역시 귀한 카메라를 받긴했지만......

"<문정>은 카메라를 조심스럽게 집어들었다. 돌길의 포석만 한 크기의 무게는 그보다 훨씬 가벼웠다. 흔적도 없이 지워진 그들의 아이와 달리 카메라는 흠집 하나 없이 말짱했다. 메모리는 아무도 살지 않은 작은 마을의 버려진 헛간처럼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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